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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주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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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909회 작성일 09-10-17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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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걸고 글을 적는 게 얼마만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이라는 명패를 걸었습니다. 노동조합 교선부장이라 맡은 게 글 쓰는 일이지만, 개인적 글쓰기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부족함 탓에 잘 적은 글은 별로 없었지만, 신중을 다한 공식적인 글쓰기만 있었습니다. 그럴수록 점점 개인적 글쓰기는 힘들어지고, 사적인 메일만 겨우 채울 뿐, 동호회 카페에 글 올리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이런 고민과 투정도 곧 저버릴 수 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품 큰 옷처럼 어색한 ‘남부장’, ‘교선부장’ 같은 호칭도 곧 떼놓습니다.


만 하루가 지났습니다.

차기 위원장 선거가 끝나고, 허탈함보다는 화가 납니다. 그 화는 ‘분노’보다는 ‘자존심’을 건드리면 쏟는 ‘울화’에 가깝습니다.

내심 어느 쪽이 이길 지 귀가 쫑긋했지만, 이렇게 마음을 다잡을 수 없는 것은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하는 먹먹함이 더 ‘울화’를 건드린 것 같습니다.

노동조합에서 함께 일한 김태진 위원장이 딱 137표차로 떨어진 것은, 2년 전 양춘복 선배와 함께 한 선거에서 나타난 140표차의 승리와 어찌 그리 딱 맞는 지, 허를 찔린 듯 가슴이 아려옵니다.

솔직히 일어나길 바랄 수는 없었지만, 차라리 300표 400표차로 떨어졌더라면, 허탈하지만 ‘자존심’을 쑤시는 ‘울화’는 느끼지 않을 것이라 ‘상상’을 해봅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크고 작은 투쟁에 두 차례의 단체교섭을 했고, 일주일간의 파업도 있었습니다. 노동조합이 한 이런저런 일도 많았는데, 그럼 우리 집행부가 그 시간동안 한 일은 뭐였는지...도대체 우리가  제대로 일을 했다는 말인지, 제대로 못했다는 말인지... 지금 결과로는 어떻게 살펴볼 수 없습니다.

자기 지부에서 나온 후보는 싹 몰아주고, 조직별 구도라 믿어온 양태대로 득표는 그대로 이어지는 이 현상을 저는 이해하기 어렵다기보다 순순히 이해하는 행위가 더 짜증스럽습니다.


이 짜증은 예전부터 계속 해 온 의문에 덧붙여집니다.

일주일간의 파업 투쟁을 마치고, 많은 조합원들이 비판의 목소리와 분노를 표출했지만, 파업을 이끈 지도부에 대한 신임투표결과는 78%나 찬성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매년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노동조합의 큰 변화를 불러 올 산별전환투표도 압도적인 찬성이 나왔는데, 산별전환과 관련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노동조합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없었습니다. 무서운 무관심입니다.


이게 문제라고 느끼고, 답답함을 토로하는 것도 제가 선전을 담당하고, 노동조합이 돌아가는 것을 형상화해 보여드리는 일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소통’이 화두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소통’의 통로에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고, 게을렀다는 것을 탓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일련의 기억들이 덧붙여지면서, 자책과 쪽팔림과 상한 자존심이 쟁쟁 맴돕니다.

그렇다면, ‘소통’을 하겠다는 박양수 당선자가 된 것도 맞는데, 그렇구나 하는 확신을 하지 못하는 것도 답답할 뿐입니다.


오늘 저녁 퇴근하면서, 예전 다녔던 대학에 갔습니다.

한 때 피 끓는 청춘에 세상을 바꿔야한다고 외치며, 밤낮을 머물던 동아리방 주변도 서성거렸습니다. 학생회가 있는 건물 주변에서 옛적처럼 캔커피 하나에 담배를 꼬다 물었습니다. 그게 어언 20년 가까운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기억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데, 저는 왜 그 틀을 벗지 못하는 지... 배운 게 그것뿐이라 그랬던가요. 세상은 진보했고, 노동자 국회의원도 이미 나왔는데, 항상 갈증은 그치지 않는 게 왜일까요. 혁명을 바라기는 세상이 너무 복잡해 있고, 개혁이라는 단어는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독차지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게 ‘진보’에 어떻게 맞춰질 지 생각했습니다.

노동자가 정말 세상의 주인인지 헷갈릴 때도 많습니다. 정말 제가 ‘노동자’인지, 머릿속으로 그렸던 그 ‘노동자’의 정체성에 맞는 삶인지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넓은 평수 아파트에 번듯한 중형차에  아내까지 돈벌이를 하고 있으니, 제가 부르는 ‘노동자의 노래’는 누가 누구를 위해 부르는 것인지 머릿속이 정돈되지 않습니다.


이기지 못함에 억울함으로 이런 사적인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해도, 모두 아니라고 생각하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머리 처박고, 한 눈 팔지 않고, 아내의 잔소리와 눈물까지 외면하며 보냈던 시간을 누구도 칭찬도 비난도 하지 않았다는 피해의식이 ‘소통’이 아니라 이런 식의 ‘배설’로 토해내고픈 욕구를 건드립니다.


말을 쏟았지만, 홀가분함도 가득합니다.

애썼던 곳, 정 붙인 곳을 떠날 기회로 만들어준 것도, 세상사가 맘대로 할 수 없는 것도, 사는 맛이라 생각합니다.

9년째 맞는 직장생활에서 절반이 넘게 노동조합의 이런저런 활동을 하면서, 막상 내게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쥐어준 이 지하철의 일은 허투루 보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제게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다시 2년을 노동조합에서 보내야 하고, 그런 후 지하철역으로 갈 때쯤이면, 일하는 게 부담과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난 2년간 몸을 겉돌던 어줍잖은 ‘부장’ 호칭을 버리고, 8급 사원으로 돌아갑니다. 지하철역에서의 교대근무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을 때 갈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지난 5년동안 대체로 바쁘지 않은 역만 다녔는데, 이젠 바쁜 역으로 갈 수 있다면 적응이 더 빠를 것 같습니다. 원래 몸이 바쁘면 머리가 한가해 지는데, 그동안은 머리와 손가락만 항상 바빴습니다. 몸에 묻은 티를 털어내고, 머릿속 묵은 때도 덜어내면서, 큰 숨 쉬어가면서 바쁘게 움직이고 싶습니다.


그동안 항상 비판하고, 문제를 훑어보는 일에만 익숙했습니다. 이젠 적당히 순응도 하고, 누구나 겪듯 회사생활의 답답함에 부대끼면서 사는 것에 적응해야 합니다. 다시 불러 줄 ‘남주임’이라는 호칭도 정겨울테고, 승객들로부터 ‘아저씨’라는 호칭도 자주 듣겠지요.


노동조합 전임을 한 지난 2년은 제 인생에서 다시 마주칠 것 같지 않은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가슴에는 일주일간의 파업이 앞자리를 차지합니다. 항상 지저분했던 책상, 거침없이 담배를 물고 다닌 노포창 식당건물 2층도 그리움의 첫 자리를 메꿀것입니다. 마주 앉아 일을 한 동지들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겠지요.

시간이 가면, 그때 왜 그랬을까, 좀 더 잘할 것이라는 아쉬움보다는 이 모든 것들이 향수로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기억은 원래 그런 것이지요.


아직도 많은 날이 남았습니다. 정리를 하기는 이른 면도 있겠죠.

남은 날동안 정을 떼고, 아직도 여전한 유혹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복잡하고 괴로운 날도 거치겠지만, 너른 마음으로 다시 다가올 교대근무의 고단함을 걱정하면서 부지런히 보낼까 합니다.

이런 생각을 어떻게 여기 적겠냐고 하면서 어렵게 게시판을 채우고 있습니다. 지난 2년동안 매일매일 글과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항상 ‘내 스타일’의 글쓰기 갈증에 헉헉거린 점을 조금 이해하길 바랄 뿐입니다. 교선부장 가는 길에 ‘남주임’으로 한 마디 전했습니다.


남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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