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순석, 임영선동지가 천신만고 끝에 2010년 1월14일 대법원에서 이겼다. 5년 이라는 긴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던 소식이기에 50대 중반이 넘은 두 동지는 서로 부등켜 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이젠 마누라와 자식들 그리고 부모님에게 당신이 살아온 삶이 정당했노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5년의 세월은 이미 모든 것을 빼앗아 가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일까?
두 동지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은 기쁨보다는 지난시절 겪어야했던 살인과도 같은 해고의 아픔에 분노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민주노조를 만들기 위해 노조설립기금을 모금한 것이
해고사유
지난 2005년 9월, 25년 넘게 대한항공객실승무원으로 열심히 일했던 두 동지에게 대한항공은 추석선물로 해고통지서를 주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처자식과 나이 드신 부모님 몰래 몇날 며칠을 밤새며 보내야했다. 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자식들과 나이드신 부모님에겐 차마 이야기하지 못하고 마누라한테만 사정이야기를 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마누라와 부등켜 안고 밤새 눈물을 흘렸다. 쉰 살이 넘은 나이에 부당해고를 철회하라는 일인시위 피켓을 안고 회사와 공항에서 일인시위를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해고투쟁이 설마 5년을 갈지는 꿈에도 몰랐다. 특히 노조를 만들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설립기금을 모금한 것이 해고사유가 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반드시 이긴다는 생각은 했다.
회사는 부당해고 시키고 노동조합은 조합원을 제명처리하면서 둘은 찰떡궁합
대한항공은 조합원을 위한 민주노조를 겁내고 있기에 두 동지를 해고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조합원 이 해고되었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노조가 앞장서서 해고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노조를 어용노조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조합원제명을 통해 해고자를 두 번 죽이 는 짓을대한항공노조가 한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을 죽이려는 회사와 어용노조는 환상적인 커플임을 다시금 느끼면서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손해배상과 고소고발로 해고자를
벼랑 끝으로 떠미는 대한항공
부당해고를 시킨 조양호 회장이나 사장을 만나서 대화한번 하고자 몇 번을 회사 앞에 찾아갔다. 대한항공의 되돌아오는 답은 해고자들이 업무를 방해하고 기물을 손괴했다고 경찰서에 고소 고발하고 법원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로 인해 해고자들은 고스란히 신용불량자가 되고 생계는 더욱 어려워 질 수밖에 없었다.
자식들의 학업을 중단하면서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애들에겐 아빠의 해고를 알리지 않았지만 경제적 능력이 한계에 달하면서 얘들에게 학업을 중단해야겠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살던 집에서 쫓겨나와 지하방으로 들어갈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갔다.
진실은 승리한다는 믿음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처음부터 대형로펌 ‘광장’ 통해 대법관출신 변호사들을 대거 동원해 법적대응을 했다. 한마디로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었다. 지 아무리 돈과 권력이 많아도 무리한 징계를 한 대한항공의 부당해고는 밝혀질 것이라는 믿음이 5년 만에 대법원에서 밝혀진 것이다.
살인적인 고통을 준 대한항공과 어용노조는 해고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라.
대한항공의 구시대적 노무방식과 조합원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던 어용노조가 법의 심판을 받았다. 5년이라는 긴 시간 해고자들에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준 대한항공과 어용노조는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양심이 있는 기업가라면 조합원을 위한 노동조합이라고 한다면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행동일 것이다.
두 동지의 정년이 올해와 내년이다. 그래서 하루빨리 객실승무원 유니폼을 입고 정든 동료들과 비행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대한항공의 부당해고로 인해 이젠 늙은 노동자가 되었지만 두 동지를 조속히 복직시켜 객실승무원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두 동지가 첫 출근 하는 날 회사 앞에서 축하 떡이라도 조합원들에게 돌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고민을 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