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제 1차 정기 대의원 대회를 다녀왔습니다. 지난 12월 반 추천, 반 진심의 마음으로 400대의원에 출마했더랬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요. 저는 아직 부기장이니까. 요즘 노조 분위기도 좋지 않고, 회사 눈 밖에 나서 좋을 것도 없을 것 같은 생각도 들고. 몇 달 전 태어난 둘째 분유먹이고, 똥귀저기 갈고, 집안일 하고, 아내에게 사랑받기 위해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내가 좋아하는 운동도 실컷해야하고.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많은 분들의 압도적인 성원에 힘입어 당당히 대의원에 선출되었습니다.
막상 대의원에 선출되고 나니, 왠지 모를 책임감, 의협심이 생겨나더군요. 자리가 사람을 변하게 한다는 말, 이 말은 높은 보직에만 해당 되는 줄 알았더니, 대의원도 엄청난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무언가 앞장서서 해야 할 것 같고, 이것 저것 산적해 있는 많은 문제들이 제 가슴을 갑갑하게 조여 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근데 그 해답은 찾을 길 없고, 막연하고 갑갑하다는 느낌만 더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2달가량을 지내고, 2월 25일 설레는 마음으로 제1차 정기 대의원 대회장으로 향 했습니다. 양평에 위치한 쉐르빌 연수원에 도착하였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미처 숨 돌릴 틈도 없 이 간단하게 커피한잔으로 정신을 다잡고 외부교수님의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책임감과 의협심에 가득했던 제 마음은 다시금 불안과 걱정으로 바뀌었습니다.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막상 대의원 대회에 오고 나니 정말로 내가 우리 조합원들을 대신하는 대의원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상시에 적극적으로 조합 일에 관심을 갖고 참여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얼마나 조합에 대해 알고 있고, 얼마나 나를 희생할 준비가 되었는가 하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노조홈피에 올라와 있는 글들을 읽었고, 회의록이나 기타 공지사항도 ‘음, 이런 일이 있네.’ 하고 대충대충 넘어갔던 생각이 절절히 후회로 다가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몸으로 때워야지 하는 생각으로 첫 강의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1교시 수업은 성공회대의 서해성 교수님을 모시고, 일하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주제로, 우리나라 전근대사에서 백성, 노동자의 지위, 역할, 처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았고, 아울러 광장 속에서 피어난 노동자, 국민들의 의식표출과 그들의 투쟁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2시간동안 이어진 강의가 언제 끝난 지도 모르게 모든 청강자들이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고 2시부터 2번째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노동자 교육센터의 김진순 대표님께서 직접 방문하시어 대의원의 역할과 자세에 대해 서로 심도 깊게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김진순대표님은 오래전부터 노동조합과 깊은 연을 맺고 계셔서 우리 노조의 현안과 문제점, 앞으로 나아갈 방안을 확실하게 꿰뚫고 계셨으며, 우리 대의원들의 역할에 대해 아주 자연스럽게 토의의 장을 열어 주었습니다. 많은 대의원들께서 나름 생각하고 있는 대의원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2시간의 열띤 토의를 마치고 나니 비로소 내가 진짜 대의원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간이나마 자신감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날의 마지막 수업은 서울대의 이면우 교수님의 강의였습니다. 앞의 두 교수님들의 강의는 우리 노동자의 시각에서 우리 노동조합을 평가하고,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면 이면우 교수님은 상당히 중립적인 시각에서, 외부 지식인에 비친 우리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의 현실과 역할,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거부감이 느껴지는 강의였습니다. 사측을 대변하는듯한 발언을 자주 쓰곤 했습니다. 하지만 강의가 끝났을 때에는 우뢰와 같은 박수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사고의 전환을 통해 우리 노동조합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 변화해야 한다는 요지의 강의였습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단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사실만이 변하지 않을 뿐이다”라는 말이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으며,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은 통뼈냐?” 하고 반문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합니다.
6시 반에 강의를 마치고 7시부터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간단한 뒤풀이도 함께 이루어졌고요. 노조간부들과 대의원들이 함께 허심탄회하게 노동조합의 현실과 문제점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 누었습니다. 집행부 간부들의 고충을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집행부에서 모하는 거야?’ 하 고 불신했던 제 마음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대의원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대 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의 현실과 과제에 직면하는 순간 그간 집행부 간부들이 얼마나 힘든 투쟁을 하 고 있고,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식사를 하고 9시30분부터 둘째 날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총 40명의 대의원 중, 참석한 33명의 대의원 중에는 초창기 노동조합이 태어났을 때부터 노동조합을 위해 일해오신 분들도 많이 계셨고, 저처럼 처음 대의원이 된 분들도 많았습니다. 오전시간에는 간단히 원활한 회의진행을 위한 정확한 회의진행 방법에 대해 하효열 동지로부터 강의를 들었습니다. 무슨 의견하나 개진하고 관철시키는데 어찌나 절차가 까다롭던지, 처음하는 저로서는 의사 발표하는 것조차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정확한 절차를 통해 만들어진 안건 이어야만 비로소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정식으로 정기 대의원 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무국장님으로 부터 노동조합 현안 및 업무보고를 받았습니다. 2009년 임단협 진행상황을 들어보 니 회사와의 의견차이로 많은 차질을 빚고 있더군요. 공제회 사무 공간 철거 문제, 필수유지업무관련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결정문 문제, 복수노조 및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관련 진행상황, 기장승격훈련요원 선발 절차의 객관성 실태, ICAO영어 자격 시험 개선문제, 외국인 조종사 불법파견 문제 등에 대해 업무보고를 받았습니다. 2009년 회계 결산 보고도 받았습니다.
보고가 끝나고 2010년도 사업계획 및 예산심의가 있었습니다. 대의원들이 위 사항에 대해 많은 질문과 열띤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정말 내가 대의원으로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라도 꼼꼼히 더 살피고, 집행부에 쓴 소리를 하시는 다선 대의원님들의 예리함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울러 간단한 규약, 규정 개정안을 심의하고 전체 대의원대회 일정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계획된 일정보다 약 3시간 정도가 더 소요될 정도로 정기 대의원 대회의 열기는 뜨거웠다고 자평하는 바입니다. 대의원으로서 정기대의원대회에 처음 참석한 저로서는 뿌듯한 마음에 제 자신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불안과 걱정, 책임감과 의협심에 시작된 일정이었지만 이틀간의 교육과 회의를 통해 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우리 노동조합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조합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변해야만 급변하는 주변 상황 속에서 살아남고, 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 니다. 보람찬 대의원대회이었습니다. 앞으로 대의원으로서 조합의 발전과 조합원의 안녕을 위해 최 선을 다하겠습니다. 많은 성원과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끝.
-2010년 2월 26일 밤에. 첫 정기 대의원 대회를 다녀온 초짜 대의원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