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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통보 받은 날은 생일이었습니다.
마흔 여섯번째 생일날 뜻깊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 날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겠지요.
저는 노동조합 사무국장입니다.
이의용 위원장과 2013년 11월부터 2년간 임기를 마쳤고, 6개월간 현장에 복귀해서 명륜역에 근무했습니다.
작년 초 노동조합은 임금피크제와 기관사 사망 사고로 혼란을 겪었습니다. 우여곡절 작년 5월 다시 사무국장 일을 맡아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2013년 10월 노동조합 선거 때 2주 동안 열심히 현장을 다녔습니다. 그러곤 지금까지 조합원들께 모습을 거의 비추지 못했습니다. 타고난 성격이 남 앞에 나서는 걸 꺼려하고, 업무가 조합 사무실에 있거나 본사를 다녀야 해서, 집회에도 거의 참여하지 못하고, 현장활동도 하지 못했습니다. 위원장님, 지부장님, 지회장님들께서 열심히 활동하는데 든든한 뒷받침을 하는 게 제가 할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알지 못하는 분이 꽤 많을 겁니다.
요 며칠, 많은 인사를 받았습니다.
투쟁조끼에 있는 제 직책과 이름이 적힌 명찰을 보고선 목례를 하는 분, 수고한다는 인사를 하는 분, 또는 어딘가 불만의 눈길로 쳐다보는 분...
지난 화요일 12명 해고자 이름이 공개되니,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을 느낍니다.
2016년 단체교섭은 참 지루하고 힘듭니다.
작년 7월부터 시작한 단체교섭이 세 차례 파업을 겪고도 아직 결말이 나지 않고, 12명 해고에 28명 중징계만 덜컥 던져졌습니다.
만나는 조합원들께서 그럼 말씀 많이들 하십니다.
노조가 '통상임금'을 너무 꽉 쥐고 있는 게 아니냐. 현장과 조합원은 엉망이 되고 있는데, 통상임금 문제를 대승적으로 해결해라고...
사무국장이 되고 2014년 첫 교섭을 했습니다.
그때 휴가가 많이 줄었고, 육아휴직이나 병가휴직때 받는 급여도 많이 줄었습니다. 욕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변명하자면 그게 정부정책 때문이었습니다.
2015년 교섭은 무난히 선방했는데, 연말 임금피크제때문에 큰 홍역을 치렀습니다. 곧 정년에 도래할 선배들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습니다. 가만히 눈 뜨고 적지 않은 돈을 잃어버렸습니다. 물론 그것도 정부정책 때문이었습니다.
2016년에는 통상임금뿐만 아니라 성과연봉제도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당연히 정부정책 때문이었습니다.
그럼...통상임금은?
정부가 그동안 틀린 방법으로 임금 계산하도록 지침을 내었고, 이를 대법원이 바로 잡았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잘못 계산한 임금을 받기 위해 소송을 했고, 법원은 임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습니다.
임금피크제나 성과연봉제는 행정부가 정한 일이라면...통상임금은 행정부가 잘못한 일을 사법부가 고친 일인데.
왜 공사 경영진은 행정부가 정한 일은 당연하다는 듯 하고, 사법부가 하는 일은 큰 잘못인 듯 할까요?
공사 경영진에게 정부란 박근혜를 정점으로 한 '정권'이라서 그런걸까요?
그럼에도...
작년 12월12일 노동조합은 통상임금 추가 임금 55% 수준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다대선 개통에 따라 신규인력을 채용하자고 먼저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12월19일 교섭에서 다시 한 번 다대선 개통에 따라 신규인력을 채용하자고 재차 얘기를 했습니다.
12월19일에 대해 공사는 노조가 교섭도중 도망간 것처럼 묘사했었죠...통상임금과 빅딜한 신규인력을 다대선 개통인력으로 분명히 명시하자는 노조 요구에 공사측 교섭위원들이 버럭 화를 내면서 못하겠다고 큰소리 쳤고, 정회 후 노조는 문자로 통보하고 퇴장했습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도망'이라 하겠지요.
물 건너난 오래된 이야기지만...이런 얘기를 다시 들려드리는 건,
노동조합 집행부가 조합원들이 위임한 교섭권을 행사하면서, 조합원 개개인의 임금권을 협상 카드로 쓸 때 느끼는 부담감과 그로 인한 신중함을 얘기하고 싶어서 입니다.
2014년에는 휴직자들의 급여를 줄였고,
2015년에는 퇴직을 앞둔 선배들의 급여를 줄였는데,
2016년에는 교대근무자의 급여를 줄이라고 했습니다.
게다가 공사가 원한 것은 미래의 통상임금뿐 아니라, 과거의 통상임금까지 모두 포기하라는 것인데...
이게 노동조합에서 협상할 수 있는 일인지 내내 자문자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과거는 절대 아니 된다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반복해서 그럼에도...
우리 회사 재정이 안 좋다고 해서, 다대선은 개통해야 한다고 해서, 노동조합은 나름 노력을 했지만...
여차여차한 사정으로 지금까지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결과는 어쨌거나 집행부가 비판받고, 교섭에 실무자로 참가한 저도 비판받을 일입니다. 그리고 아쉬운 일입니다.
후폭풍이 거세게 휘몰아칩니다.
노조 간부 여러 명이 해고와 중징계를 받은 것도 아프지만,
역은 관리역이 되어 2인 근무로 바뀌고, 4호선은 1인 근무를 하고, 기술과 차량분야 기간제가 들어옵니다.
성과연봉제는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2015년 10월 4억8천만 원을 들인 엘리오앤컴퍼니 경영진단 용역보고서를 복사한 중장기 구조조정 프로그램 '재창조 프로젝트'를 한다고 합니다.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연간400억 원을 줄이기 위해서.
이게 더 아픕니다.
해고와 중징계는 노동위원회나 법원에서 회복할 수 있지만, 시작한 구조조정은 되돌리기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더 큰 일은... 추가로 200명 가까운 조합원을 곧 징계하겠다고 합니다. 정말 큰일입니다.
얼마전 시민단체 활동가 한 분이 조정희 부산교통공사 이사회 의장을 만나서 들은 얘기라며 전해줬습니다.
"평생 공무원 하다 부산에 왔다가 사정도 모르고 고생만 하고 있다" 전해들은 얘기라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행간은 '물정 모르는 곳에서 강성 노조 만나서 힘들다'겠지요. 박종흠 사장님에 관한 얘기입니다.
저는 그 분께 해고를 당했습니다.
스스로 어이없을 만큼 '분노'가 올라오지 않습니다. 이 심정을 표현하면, '허탈함' 같습니다.
어제 제 생일날, 함께 식사를 하며 아내가 건넨 편지에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오늘 즐거운 생일날 사장님이 해고장을 준 것은 선배가 시련을 이겨내고 더 좋은 사람이 되라는 선물일거야'
어쩌면 저를 해고시킨 박종흠 사장님께 옛적 이러한 '시련의 선물'을 준 고귀한 분이 계셨다면, 당신께서 맞이한 오늘의 고생을 이렇게 극복하려 하지는 않았을 테지요.
한숨만 나옵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활활 타오르고, 하늘에는 불화살이 마구 쏟아지고 있습니다.
너무 오래 교섭과 파업을 반복하다보니, 저뿐 아니라 노조 간부들 모두 지칠만큼 지쳤지만,
한숨 들이키고 달리고, 한숨 들이키고 달리고를 반복하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있습니다.
'강력한 투쟁으로 구조조정 분쇄하고 부당해고 철회하겠습니다. 조합원 동지 여러분 노동조합을 믿고 함께 투쟁합시다.'
...이런 구호같은 말을 한들, 저나 조합원 여러분의 속이 풀릴까요? 해결이 될까요?
어제 해고장을 받고, 맘 편히 마주 앉아 얘기하듯 제 속마음을 내보이고 싶어서 시작한 글입니다.
희망인지, 푸념인지 갈피를 못 잡는 글이 짧지도 않습니다.
신발 끈 꽉 조여 매고, 다시 걷겠습니다.
함께 해 주십시오.
댓글목록
갈바람님의 댓글
갈바람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까망님의 댓글

갈바람님께 답 드립니다.
1.
저의 글은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을 판단하고자 한 글이 아니었습니다. 교섭과정에서 집행부 일원으로 저의 생각을 위주로 말씀 드린겁니다. 다만, 제가 인지하지 못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신다면 해명 또는 수정하겠습니다.
2.3.
"위원장님의 말씀이 필요한 것 아닌가요" 는 맞는 지적입니다. 그동안 노조 소식지, 보도자료, 결의대회 등을 통해 위원장과 노조의 입장을 계속 전달해 왔습니다. 노조 입장에 대한 비판 의견과 불충분하다는 지적은 일리 있는 비판이고 위원장/집행부의 부족함으로 생각하고 더 노력하겠습니다.
제 글에 대해 "님의 푸념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알겠습니다.
다만, 해고 후 노조 간부로써 느끼는 심정을 털어놓고자 한 글이기에, 제 글에 대해 비판이나 의견은 계속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님의 댓글을 제가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그건 님께서 판단하실 문제입니다.
"위원장의 희망의 담화"는 필요한 일입니다. 다만, 사안의 중요성 때문에 노조 내에서 투쟁 방향에 대해 계속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음주 대의원대회를 통해 투쟁계획을 확정할 예정이기에 그에 맞게 적절한 시기에 준비하겠습니다. 희망의 담화에는 저의 잡글처럼 푸념이나 개인적 생각이 들어가면 되지 않기에
님께서 말씀하신 "위원장께서 상황을 반전할 비젼도 없다면...그만 두는 것도 한 방편일겁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항상 유념하겠습니다.
4.
작년 6월1일부터 3일까지 진행한 '통상임금 소송결과를 반영하여 노동시간 단축 시행/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청년실업 해소'등의 노동시간 단축투쟁 지침 확정을 위한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해서 조합원 85.1%의 투표율/93.3% 찬성률이 나왔습니다.
님의 말씀처럼 "파업 찬반 투표때 제대로 인지 못한 조합원을 이용"한 것은 아닙니다.
질문하신 "통상임금의 향후 지급 예정 금액을 신규채용을 위해 양보" 한다는 조직적 결정은 위의 조합원 총투표 결정에 근거한 것입니다.
님이 지적하신 "대의원대회에서도 이런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에 대해서는 16년5월11일 29기 임시6차 대의원대회에서 위 투표 부의 건에 대해 안건으로 상정했고, 설명과 질문 후 의결하여 투표를 진행했다는 말씀드립니다.
"통상임금의 향후 지급 예정 금액을 신규채용을 위해 양보한다는 선전물이 역에 부착 했었는데"...작년 10월 경 부착한 '포스터-매년 300억원에 이르는 지하철노동자들 몫(임금)을 청년고용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의 제안을 걷어찼습니다'를 지적하신다면 "(한번도 현장에 의견을 구한적 없고)..누가 그런 결정을 했습니까? (선전물 부착 당시에는) 대의원대회에서도 이런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라는 의견은 님께서 잘못 알고 계신 것입니다.
행여 6월 이전에 나간 그러한 내용의 포스터가 있었고 그래서 그 부분을 지적하신다면, 시기와 포스터 내용을 간단히라도 언급해 주시면 제가 그걸 찾아서 그렇게 된 과정을 설명드리겠습니다.
김광조님의 댓글
김광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질문에 답이 달려 있네요.
질문의 내용은 글쓴이가 삭제했는지 내용은 알수 없지만 답글이 달려서 저도 글을 남기게 되네요.
일단 불신임된 사장과 교섭을 다시한다고 소문이 돌고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혼란스럽습니다. 불신임된 사장을 몰아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했는데 다시 교섭의 당사자로 인정은 전략전술상 필요한 판단이 있었겠죠.
'통상임금의 향후 지급 예정 금액' 매년 300억원을 지하철노동자들은 작년 6월1일부터 3일까지 진행한 '통상임금 소송결과를 반영하여 노동시간 단축 시행/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청년실업 해소' 에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1. 노동시간 단축시행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노도조합 요구안의 노동시간 단축의 핵심은 지정휴일 확대나 4조2교대 근무형태입니다.
공사는 주간지정휴일 확대를 주장했고 노동조합은 요구안은 4조2교대나 3조2교대 근무형태에서 주간2당무, 야간2당무입니다. 교섭에서 요구안 변경시 대의원대회시 쟁대위에서 위임된 권한으로 할수있다고 들었습니다. 노동조합은 300억중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하여 얼마를 사용할것인가. 노동조합 요구안(변경포함)시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얼마가 필요한지 자료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노동시간 단축 시행측면의 방법으로 연차수당을 폐지하는 방안을 자유게시판에서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연차수당 폐지로 발생하는 임금손실을 보전하기위해 통상임금을 사용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제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0. # 연간지정휴일과 분기지정휴일은 행정감사에서 지적되어 폐지해야 한다고 공사가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사는 앞으로도 계속 주장할것입니다.
0. # 주간지정휴일1일을 추가하고 연간지정휴일을 폐지하면 일근자는 휴가가 축소됩니다.
0. # 국제노동기구 ILO는 연차의 사용을 강제하고있습니다.
0. # 연차는 일근자에게도 적용됩니다. 일근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해결될수 있습니다.
0. # 일반적으로 통상임금은 근무년수가 오래될수록 금액이 많습니다. 지정휴일은 근무년수와 상관없이부여되지만 연차도 근무년수에 따라 증가합니다.
2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청년실업 해소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일자리 나누기를 위해서 300억중에서 얼마를 사용할것인가. 또한 채용인원 요구안 산정시 신규직원에게 적용할 임금은 평균임금으로 적용할것인가 아니면 9급3호봉을 적용할것인가. 적용에 따라 채용인원규모가 달라질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사는 평균임금을 주장하지만 노동조합은 9급3호봉을 적용하겠죠.
0. 하지만 통상임금 300억과 관련하여서는 약점이 있습니다.
300억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시간외수당은 근무형태와 연관해서 발생하기 때문에 통상근무로 근무형태 변경이나 탄력적근로시간제 도입시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근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있습니다. 공사는 탄력적 근로제로 근무형태 변경시 시간외수당은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돈이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어렵고 힘든싸움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너무지쳐서 같은편에게 주먹을 날리기도 합니다. 좀더 지혜가 필요한 시기입니다